P.19 그의 입에서 여태까지의 목소리가 아니라 남자도 여자도 아닌 마치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이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밤하늘을 찢는 천둥과 같은 그 소리는 마치 하늘에 대고 외치는 귀곡성과도 같았다.
“이 땅에 최면을 걸어라.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최면을. 그리하여 조선을 사발 안에서 끓게 하라! 이것은 묘망한 천년의 저주로다!”
P.101 ”목적은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야. 즉 뉴스란 말이지. 그 주목을 끌기 위해 일부러 가스총을 든 거야. 팔순 노인과 가스총. 이보다 흥미로운 뉴스거리가 어디 있겠어?“
P.224 “조선을 망치겠다고 그리 많은 저주를 다 뿌려댔으면 지금 한국은 완전히 찌그러졌어야지 네놈은 왜 한국의 기가 다시 뻗을까 걱정하느냐? 그따위 저주 백날 읊어봐야 결국 순리의 흐름에 미치지 못함을 사실은 네놈도 아는 까닭이 아니더냐!”
P.225 “사명당은 조선이 망국의 기운에 들어있을 동안 수호의 업業을 가진 이가 조선을 지킬 거라 하였습니다. 혹시 선사는 한국에 계시는 동안 짚이는 인물이 있으셨는지요?”
P.271 “진실로 원혼의 자취가 없구나. 고향을 바라보며 편히 잠든 혼령만 있으니 어느 고명한 신인이 있어 이토록 대자대비한 술법을 펼쳤을까. 잠든 이들이 영생토록 원한을 거두도록 마음을 어루만진 이가 대체 누굴까.”
P.280 “뿌리를 이어야 할 이가 꽃이 되어 흐드러졌으니 이제 낙화할 일만 남았소. 풀어야 할 대사大事가 그것만은 아닐진대. 다른 이의 힘을 빌지 않고 스스로 몸을 내던질 이유가 없었소.”
P.282 “숫자의 지혜로만 가득 차게 될 세상에 어떤 이가 균형을 잡을지 궁금했었소. 음식을 끊고 폭포를 바라보는 고승이 사라지고, 조상의 기억을 기리며 그리움을 어루만지는 무당이 사라지고,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어루만지는 제관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누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지 궁금했단 말이오.”
P.296 “말 몇 마디, 글자 몇 개로 실제 있었던 일이 사라지고 없어지고. 그 때문에 의식이 바뀌고. 믿기 어렵겠지만 여러분 조국은 그렇게 한국을 지배했습니다. 잔재, 일제강점기의 잔재. 아마 잔재라는 말을 한국보다 많이 쓰는 나라는 세계에 또 없을 거예요.”
P.297 “그것은 한국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겪어도 줄곧 잊고, 용서한 적도 없으면서 스스로 용서했다 믿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당하지 않은 척 체면치레를 하며 약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여온 까닭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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